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07-01-16 (화) 23:10
ㆍ조회: 1170    
알파토크 - 요약2주

2주 예수님은 왜 돌아가셨는가?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모양의 귀걸이나, 팔지,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  사람들은 이런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수대나 전기의자가 달린 주을 걸고 다닌다면 무척  놀랄 것이다.  십자가는 바로 그와 똑같은 사형 집행 도구이고 인류에게 알려져 잇는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십자가형은 A.D315년에 폐지되었는데 로마인들조차도 너무나 비인간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상징으로 여겨져 내려왔다.  복음의 상당 부분은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신약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거의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국가적으로 영향력을 가졌거나 혹은 세계를 변화시킨 지도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삶이 그 시대에 끼친 영향 때문에 기억된다.  
예수님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 크게 세계역사의 모습을 바꾸어 놓으신 분이지만, 그분은 그분의 삶보다는 죽음으로 인하여 기억되고 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우리의 죄를 우히ㅏ여 죽었다”고 기록하는데, 무슨 뜻인가? 에 대해 알아보자

Ⅰ.죄의 문제  
종종 사람들은 “나는 기독교가 필요 없다”, “나는 무척 행복해요, 내삶은 풍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죠”라고 말한다.  왜 예수님이 돌아가셨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잘못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범한 일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우리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수많은 범죄자들 혹은 이웃 사람과 비교해 봐도 꽤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을 비교해 보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지를 깨닫게 된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이며(창3장), 그 결과는 그분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우리가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면 그게 문제 될 것이 있나요? 라고 말한다. ☞ 물론 문제가 된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네 개의 제목으로 요약해 보면
①죄의 오염성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감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것들이 우리 삶을 오염시킨다.  ↠ “나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는데요”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but 그것들 중 단 하나만 으로도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하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율법을 하나라도 어기면 전부를 어기는 죄를 짓는다고 말한다.(약2:10) 깨끗하든지 아니든지 둘 중 하나다

②죄의 권세성
 나쁜 짓은 중독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약을 사용하면 중독되듯이 고약한 성미, 질투, 오만, 자랑, 이기심, 중상모략 혹은 성적인 방탕에 중독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우리 스스로 깨뜨릴 수 없는 사고방식이나 습관적인 행동에 중독될 수도 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힘의 종이 된 상태인 것이다.  
③죄의 형벌성
 인간의 본성에는 정의를 갈망하는 무엇인가가 잠재되어 있다.⇨성추행을 당한 어린이나 자기 집에서 습격을 당한 노인들, 구타당한 아기들을 볼 때 그런짓을 한 사람들은 잡혀서 벌을 받기를 바란다.  종종 그 동기가 복수의 요소가 섞이기도 하지만 정의로운 분노라는 것이 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이 그 벌을 교묘히 피해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은 다른 사람의 죄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다.  어느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④죄의 분리성  
 바울이 말한 죽음은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결과를 낳는 영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1-2). 우리가 행하는 악한 일들이 이 벽을 만든다.

Ⅱ.죄의 해결
 우리 모두는 사는 동안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① 하나님의 자기 대속
 기독교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오셨다.(고후5:21,갈3:13)

ex) 1941년 6월31일 아우슈비츠 포로 한 명 탈출- 이 보복으로 10명의 동료 포로들이 죽어야 했다. “내 불쌍한 아내와 아이들”이라며 절규하는 프란시스 게요니첵을 대신해 맥시밀란 콜브 신부가 대신 죽음을 택함, 벌거벗겨진 채 굶주림의 벙커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누워서 기도하며 찬송가를 부름.  2주후에도 이중 3명의 남자와 맥시밀란 신부가 살아남음, 다른 사람을 위해 벙커가 쓰여져야 했기 때문에 8월14일 12시50분에 처형당함.- 1982년 10월10일 로마 성메드로 광장에서의 격식와 예의를 갖춘 두 번째 장례식에 게요니책, 그의 아내, 그의 자녀들,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함께 참석했다. 실로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함
 예수님의 죽음은 이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한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이세상의 모든 사람 하나하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②십자가의 고통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자로 오셨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다.  예수님은 발가벗겨진 채 기둥에 묶였다. ➡그리고 날카로운 톱니 모양의 뼈 조각과 납덩어리가 엮어진 네다섯 가닥의 가죽 끈으로 된 채찍으로 맞으셨다. ➡집정관 앞에 끌려갔을 때 가시관이 그의 이마 위에 씌워졌다. ➡600명의 군중에게 조롱당하며 얼굴과 머리를 맞았다➡그런 다음 무거운 십자가를 피가 흐르는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했으며➡십자가 터에 이르자 다시 발가볏겨졌다.➡그는 십자가 위에 눕혀졌고 15cm의 못이 손목 바로 위인 전박을 뚫었다➡무릎은 옆으로 비틀려져 아킬레스건과 경골 사이 발목에 못이 박혔다➡ 그곳에서 뜨거운 열과 견딜수 없는 갈증 속에서 매달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약6시간을 매달려 있었다.
 그가 겪은  최악의 고통은 육체적은 상처나 친구나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한 정서적인 아픔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지는 데서 오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영적인 고통이었다.

Ⅲ. 십자가의 결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설명하기 위한 4개의 이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①법정의 이미지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5:1)이라고 말한다.  의롭다 함은 법적인 용어이다.  만약 법정에 섰다가 사면되었다면 그것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다.  ex) 어릴적 깊은 우정을 두 사람이 있는데, 후에 한사람은 판사가 되고 다른 사람은 범죄자가 되어 그 판사 앞에 나타났다.  그는 범죄를 저질렀고 자신도 그 죄를 인정했다.  판사는 오랜 친구를 보며 갈등하지만 판사로서 공정해야 하므로 그 죄에 합당한 벌로써 벌금형을 선포했다.  그런 다음 그 판사는 자리에서 내려와 벌금에 해당하는 액수의 수표를 써 친구에게 준다.
 이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심판하시지만, 또한 사랑하시기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대신해 벌을 받으셨다.  죄인이 벌을 받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공의로운’ 동시에 그의 아들을 통해 그 벌을 자신이 감당함으로써 우리가 자유를 얻을 수 있게 하신다는 의미에서‘의롭게 하시는 분’이시다.(롬3:26)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형벌은 단순히 벌금이 아니라 죽음이며, 하나님은 친구정도가 아니라 그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로 인해 하나님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돈이 아니라 그의 하나 뿐인 아들이었다.

②시장의 이미지
 큰 빚을 진 한 남자가 시장에 자신을 노예를 내놓았다고 가정하자. 누군가 그를 불쌍히 여겨 그의 빚을 다 갚아주었다면 그는 ‘몸값’을 치르고 ‘그를 구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으로 대속의 값을 치르셨다(막10:45). 이렇게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이다.  예수님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말씀하셨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죄의 지배력이 깨어졌다는 것이다.

③성전의 이미지  
 구약시대에 일반적으로 죄인은 짐승을 잡아 죽인 피 값으로 정결케 되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모형, ‘그림자’일 뿐이었다(히10:1). 오직 그리스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분의 피 만이 우리의 죄를 없앨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그분만이 완벽한 삶을 살았기에 완벽한 희생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주면 죄로 인한 오염을 막아줄 수 있다.

④가정의 이미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죄의 뿌리와 결과는 둘 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이다.  십자가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가능성이다.  어떤 사람들은 죄 없으신 예수를 벌했으니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 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육체를 통해 스스로 대리자가 되셨고 우리가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시며 보통 아버지들이 자기의 자녀와 친해지고 싶어 하듯이 우리와 친해지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는 바로 당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 십자가를 이렇게 인격적인 관계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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